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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앙코르는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아니라 천천히 이사한 것이다.

해자 바닥의 70cm 흙기둥이 들려준 크메르 수도의 마지막 100년

앙코르는 하루아침에 무너진 게 아니라 천천히 이사한 것이다.

앙코르에 다녀온 사람이라면 대부분 같은 이야기를 들었을 겁니다. 크메르 제국의 수도는 1431년, 지금의 태국 중부에 있던 아유타야 왕국의 공격으로 무너졌고, 사람들은 도시를 떠났다는 이야기입니다. 가이드북에도 안내판에도 이 연도가 자주 등장합니다. 오랫동안 학자들도 이 설명을 중요하게 다뤄 왔고, 당시의 기록을 보면 그렇게 볼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그런데 이 이야기에는 빈 곳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구자 댄 페니는 15세기 앙코르에 관한 역사 기록이 사실상 비어 있다고 말합니다. 사건은 알려져 있지만, 그 직전의 도시가 어떤 모습이었는지는 잘 모른다는 뜻입니다. 침략군이 들어섰을 때, 앙코르는 과연 여전히 번성하는 수도였을까요.

문서 대신 흙에게 묻다

이 질문의 실마리는 문서가 아니라 흙에서 나왔습니다. 연구팀이 주목한 곳은 앙코르톰의 해자였습니다. 앙코르톰은 12세기에 세워진 성벽 도시로, 앙코르 유적군에서 마지막으로 가장 크게 지어진 성곽 도시입니다. 유적 전체는 시엠립 지방의 앙코르 고고학 공원 안에 숲을 포함해 약 400㎢에 걸쳐 펼쳐져 있고, 유네스코는 1992년 이곳을 세계유산으로 등재했습니다.

도시를 둘러싼 해자 바닥에는 수백 년 동안 흙과 꽃가루, 숯 조각이 차곡차곡 쌓였습니다. 연구팀은 그 층층이 도시의 생활을 적어 둔 일기장이 될 수 있다고 보았습니다. 2019년 미국 학술지 PNAS에 실린 연구에는 호주 시드니대학교와 플린더스대학교, 프랑스 극동학원 소속 연구자들이 이름을 올렸습니다. 이들은 앙코르톰 남쪽 해자에서 길이 약 70cm의 흙기둥을 뽑아 방사성 연대 측정으로 층마다 나이를 매기고, 그 안의 식물 흔적과 퇴적물을 분석했습니다.

조용히 줄어든 세 가지 신호

결과는 뜻밖이었습니다. 불을 쓴 흔적인 숯, 숲을 건드린 흔적, 땅이 깎여 흙이 쓸려 내려온 흔적. 세 가지 신호가 모두 14세기 초부터 함께 줄어들기 시작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땅을 활발하게 쓰던 도시 중심부에서 활동이 서서히 잦아들었다는 뜻입니다. 14세기 말에는 해자 표면이 떠다니는 늪 식물로 덮였습니다. 더 이상 아무도 해자를 돌보지 않았다는 신호로 읽힙니다. 연구팀은 도시의 경제·행정 중심부에서 땅 이용이 줄기 시작한 시점이 아유타야의 침략보다 100년 넘게 앞선다고 밝혔습니다.

연구팀의 해석은 이렇습니다. 시설이 망가져서 사람들이 떠난 것이 아니라, 통치 엘리트가 먼저 떠나면서 시설이 관리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권력의 중심이 수도 바깥의 도시들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는 것이지요. 상업 기회가 더 많은 곳, 무역에 유리한 해안 쪽 도시로 갔을 가능성도 거론되지만 정확한 행선지는 이 연구만으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균형을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합니다. 이 논문은 14세기 중반과 15세기 초의 기후 변동이 앙코르의 물 관리망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도 함께 언급합니다. 침략과 기후, 권력의 이동이 함께 얽힌 이야기이지, 하나의 원인으로 정리되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해자 한 곳에서 얻은 자료라는 한계도 있어서, 학계에서는 지금도 추가 검증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1431년이 의미를 잃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그해는 '끝의 시작'이라기보다 '이미 오래 진행된 변화의 한 장면'으로 보는 편이 더 정확해 보입니다. 침략군이 들어선 도시는 번성하던 시절의 수도와는 이미 다른 얼굴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그리고 질문은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떠난 엘리트와 주민들은 정확히 어디로 갔을까요. 도시 한가운데가 비어 가는 동안, 바깥 마을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었을까요.

남문 다리 위에서

이 이야기를 알고 앙코르톰을 걸으면 같은 풍경도 다르게 보입니다. 앙코르와트에서 이어지는 큰길의 남문은 방문객이 가장 많이 찾는 입구입니다. 복원이 잘 되어 있고, 얼굴 조각 일부는 복제품이라고 합니다. 다리 위에 서서 성벽과 해자를 함께 바라볼 때, 지금 보이는 물길은 복원되고 관리된 풍경이라는 점을 떠올려 보세요. 연구가 말하는 14세기 말의 해자는 늪 식물로 덮인 조용한 물이었습니다.

도시 한가운데의 바이욘 사원은 13세기에 자야바르만 7세가 세웠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앙코르톰이 가장 활기차던 시절의 흔적이지요. 그로부터 불과 100년 남짓 지나 도시 중심의 숨결이 잦아들기 시작했다는 사실을 함께 떠올리면, 수많은 얼굴 조각의 미소가 조금 다르게 다가옵니다. 현지 가이드에게 이 도시가 쇠퇴한 이유를 최근 연구는 어떻게 보는지 물어보는 것도 좋습니다. 앙코르는 지금도 불교 신앙의 장소이기에, 현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와 연구 결과를 나란히 듣는 것만으로도 여행이 깊어집니다. 안내판의 설명이 지금의 학계 시각과 조금 다르더라도 틀렸다고 단정하기보다, 이전에 정리된 설명으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앙코르는 한순간에 사라진 도시가 아니라, 수십 년에 걸쳐 천천히 이사한 도시였을지도 모릅니다. 1431년이라는 숫자 하나를 외우는 대신 그 앞의 100년을 떠올리며 돌길을 걸어 보세요. 해자 바닥의 흙이 들려준 이야기가, 거대한 돌 사이로 조용히 흘러갈 것입니다.

※ 입장권 요금과 운영 시간은 바뀔 수 있으니 방문 전 앙코르 고고학 공원 공식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

참고 출처

  1. - Penny, D., Hall, T., Evans, D., Polkinghorne, M. (2019). *Geoarchaeological evidence from Angkor, Cambodia, reveals a gradual decline rather than a catastrophic 15th-century collapse.* PNAS, 116(11), 4871–4876. (미국 학술지 / 호주·프랑스 소속 연구진)
  2. - University of Sydney (호주) (2019.2.26). *New research casts doubt on cause of Angkor's collapse.*
  3. - UNESCO World Heritage Centre (국제기구). *Angkor* (세계유산 목록 668번).
  4. - Arab News (파키스탄) (2019.2.26). *Angkor decline gradual rather than catastrophic: study.*
  5. - Vietnam News (베트남) (2019.2.26). *Angkor decline gradual rather than catastrophic: study.*
  6. - Lonely Planet. *Angkor Thom South Gat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