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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00년 궁전이라는 "크노소스”의 빨간 기둥들이 100년 전 콘크리트?

3,500년 전 미노아 문명 위에 100년 전 고고학자의 상상이 겹쳐진 유적

3,500년 궁전이라는 "크노소스”의 빨간 기둥들이 100년 전 콘크리트?

그리스 크레타섬에서 가장 큰 도시 이라클리오의 남쪽, 케팔라 언덕에 크노소스 유적이 있습니다. 그리스에서 아크로폴리스 다음으로 많은 사람이 찾는 유적입니다. 이곳을 다녀온 사람이라면 대개 비슷한 설명을 들었을 겁니다. 빨간 기둥과 2층 건물은 미노아 문명의 궁전이고, 벽에 그려진 그림은 3,500년 전의 벽화이며, 이곳이 바로 미노스 왕의 전설 속 미궁 라비린토스라고요.

그렇게 믿을 만한 이유는 충분했습니다. 이곳은 실제로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문명 가운데 하나의 중심지였고, 그리스 문화부에 따르면 기원전 17세기에서 15세기 사이에 가장 번성했습니다. 그런데 그 빨간 기둥 앞에 서서 조금만 더 들여다보면, 이야기는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합니다.

발굴한 사람이 다시 지은 궁전

영국 옥스퍼드 애슈몰린 박물관에 따르면, 영국 고고학자 아서 에반스는 1900년부터 1931년까지 이곳을 발굴하며 이 건물을 '미노스의 궁전'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땅을 처음 판 사람은 사실 에반스가 아니라 크레타 출신의 미노스 칼로카이리노스였지만, 땅을 사들인 에반스가 오랫동안 직접 발굴과 복원을 이끌었습니다.

미국 시카고대학교 출판부가 펴낸 캐시 기어의 책 『크노소스와 모더니즘의 예언자들』(2009)은 에반스가 처음부터 콘크리트로 궁전을 지을 생각은 아니었다고 전합니다. 1905년 그는 유적 근처에 자기 집 '빌라 아리아드네'를 지었는데, 당시로서는 새로운 재료였던 철근 콘크리트로 지은 그 집이 놀랄 만큼 빨리 올라갔습니다. 발굴된 벽과 바닥은 비와 햇볕에 하루가 다르게 무너지고 있었고, 에반스는 콘크리트가 무너지는 유적을 받치고 지키는 가장 실용적인 방법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처음에는 보호용 지붕과 기둥을 세우려던 것이었지요.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나무 기둥 자국 위에 세운 콘크리트

기어에 따르면 에반스는 1905년부터 1930년까지 궁전을 다시 지었습니다. 네모난 콘크리트 들보 안에 석회암을 채워 벽을 세우고, 회색 콘크리트 바닥의 가장자리는 일부러 깨진 돌처럼 다듬었으며, 그 바닥을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빨간 기둥이 받치게 했습니다. 애슈몰린 박물관은 발굴 때 나무 기둥이 서 있던 자국이 발견되었고, 썩어 없어진 그 자리에 콘크리트 기둥을 세웠다고 설명합니다. 종이 위의 복원 그림이 실제 복원의 영감이 되면서 해석이 한 겹 더 얹혔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기어는 이 '고대 궁전'이 크레타섬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철근 콘크리트 건물 가운데 하나라는, 조금은 씁쓸한 영예를 갖게 되었다고 적었습니다. 케임브리지대학교 출판부도 에반스의 콘크리트 복원이 추측에 기댄 복원으로 지금까지 논란이 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벽화도 비슷합니다. 영국 왕립화학회의 교육 자료에 따르면 에반스는 벽화 조각을 맞추려고 스위스 화가 에밀 질리에롱과 같은 이름의 아들을 불렀고, 두 사람은 30년 넘게 크노소스의 벽화 복원을 맡았습니다. 대표적인 '백합 왕자'는 1905년 아버지 질리에롱이 머리와 왕관의 작은 조각, 몸통 일부, 허벅지 조각만으로 전체를 완성한 그림입니다. 영국 고전학자 메리 비어드는 이 복원이 1926년 지진으로 크게 망가져 아들이 다시 그렸으며, 이라클리오 박물관을 찬찬히 보면 남아 있는 원래 그림이 대부분 손바닥보다 작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의 우테 귄켈-마셰크는 이 인물이 어느 쪽을 보고 있었는지, 팔을 어떻게 들었는지를 두고도 학자들의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고 정리합니다.

2025년 5월 16일에는 궁전 동쪽 '왕비의 방'의 돌고래 벽화가 강풍에 무너지는 일도 있었습니다. 그리스 문화부는 그것이 1960년에 만든 복제본이며 원본은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에 안전하게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런데 이라클리오 박물관의 설명에 따르면, 에반스는 이 그림이 문 위 벽에 있었다고 보았지만 위층 바닥에 그려진 그림이었을 가능성도 제기됩니다. 많은 방문객이 진짜라고 여기며 바라보던 그림은 복제본이었고, 그 복제본조차 원래 어디에 있었는지 확실하지 않은 그림이었던 셈입니다.

정말 '궁전'이었을까

이름도 질문을 피해 가지 못합니다. 과학 매체 라이브 사이언스에 따르면 '왕좌의 방'에 실제로 왕이나 왕비가 앉았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영국 역사가 로드니 캐슬던은 1990년 책에서 이곳이 왕궁이 아니라 신전이었다는 해석이 더 설득력 있다고 주장했고, 일부 학자들은 기능을 단정하지 않으려고 '안뜰 중심 건물' 같은 중립적인 이름을 씁니다. 2025년 7월 크노소스는 파이스토스, 말리아, 자크로스, 조민토스, 키도니아와 함께 '미노아 궁전 중심지'라는 이름으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올랐는데, 그 심사 과정에서 자문기구 이코모스는 그리스 정부에 '궁전 중심지'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에반스가 처음 만든 개념과 어떻게 같고 다른지를 설명해 달라고 요청했습니다. 크노소스가 미노아 사회의 중요한 중심지였다는 점은 널리 받아들여지지만, 이곳이 왕이 사는 궁전이었는지는 여전히 열린 질문입니다.

콘크리트도 이제는 역사가 되었다

그렇다면 그 빨간 기둥은 허물어야 할 가짜일까요. 그리스 정부의 답은 반대였습니다. 1990년대 그리스 문화부는 에반스 복원의 콘크리트 상당 부분을 보수하고 관람로를 만들었고, 2026년 3월에는 크레타 주정부와 문화부가 185만 유로를 들여 '왕비의 방'을 복원하고 관람로를 고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완료 목표는 2029년 11월입니다. 영국 아테네 연구소는 지금도 에반스가 세운 크노소스 연구센터에서 연구를 이어 가고 있습니다.

크노소스는 두 개의 시대가 겹쳐 있는 유적입니다. 아래에는 3,500년 전의 미노아 문명이, 그 위에는 100년 전 한 고고학자의 해석이 놓여 있습니다. 그 콘크리트는 20세기 초 사람들이 고대를 어떻게 상상했는지를 보여 주는 또 하나의 기록이기도 합니다. 크레타에서는 지금도 에반스의 업적을 높이 평가하는 목소리가 많습니다. 그의 복원 덕분에 무너질 뻔한 유적이 지켜졌고, 미노아 문명이 세계에 알려졌기 때문입니다. 두 시선을 함께 품는 것이 이 유적을 존중하는 방법일지도 모릅니다.

두 시대를 나눠 보는 눈으로

그러니 크노소스에서는 실망하기보다 구별해 보는 즐거움을 누리면 좋겠습니다. 아래로 갈수록 가늘어지는 빨간 기둥, 깨진 돌처럼 다듬어진 회색 콘크리트의 가장자리를 찾아보고, 낮게 남은 돌벽과 저장 항아리, 안뜰 같은 고대의 흔적과 견주어 보는 것입니다. 매끈한 회색 콘크리트와 칠한 기둥은 대부분 20세기의 것이고, 낮게 남은 돌벽과 바닥은 고대의 것인 경우가 많습니다. 헷갈리면 가이드에게 이 부분이 복원인지 물어보면 됩니다. '왕비의 방'이나 '왕좌의 방' 같은 이름도 에반스가 붙인 해석이라는 점을 기억해 두세요.

이라클리오 항구에서 차로 15분쯤 떨어진 크노소스를 먼저 보고, 시내의 이라클리오 고고학 박물관을 나중에 가 보는 순서를 권합니다. 현장에서 본 완성된 모습이 머릿속에 있으면, 박물관 위층 전시실에서 진짜로 남은 손바닥만 한 조각들이 훨씬 또렷하게 보입니다. 백합 왕자와 돌고래 벽화의 원본을 꼭 찾아보세요. 그늘이 적고 붐비는 유적이니 아침 일찍 가는 것이 좋고, 돌길과 계단이 많아 편한 신발과 물, 모자를 챙기는 편이 좋습니다. 줄이 쳐진 구역에는 들어가지 말고 벽과 기둥에 기대지 않는 것, 강풍 같은 날씨에는 유적이 임시로 닫힐 수 있다는 것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공사가 예정된 동쪽 구역은 막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빨간 기둥 앞에서 사진을 찍을 때, 그 아래 숨은 3,500년과 그 위에 더해진 100년을 함께 떠올려 보세요. 하나의 유적에서 두 개의 시대를 만나는, 조금 특별한 여행이 될 것입니다.

※ 학술적 해석은 연구에 따라 바뀔 수 있으며, 입장 규칙과 요금, 운영 시간, 공사 구역은 방문 전 공식 안내를 확인해 주세요.

참고 출처

  1. Rebuilding the Palace of Minos at Knossos (Ashmolean Museum, 영국)
  2. Knossos – a new UNESCO World Heritage site (British School at Athens, 영국, 2025-07-17)
  3. Palace of Minos 색인 도서 소개 (Cambridge University Press, 영국)
  4. Restoration or reconstruction (Royal Society of Chemistry Education, 영국)
  5. Ute Günkel-Maschek, The Lilies of the Prince (Annual of the British School at Athens, Cambridge University Press, 영국 / 저자 소속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
  6. Knossos and the Prophets of Modernism — Introduction (University of Chicago Press, 미국, 2009)
  7. Mary Beard, Knossos: Fakes, Facts, and Mystery (The New York Review of Books, 미국, 2009-08-13)
  8. Knossos: Palace of the Minoans (Live Science, 미국)
  9. Minoan Palatial Centres — ICOMOS Interim report and additional information request (UNESCO 세계유산센터, 국제기구, 2025-01-31)
  10. Crete's Minoan Palaces: UNESCO World Heritage (Greek News Agenda, 그리스 정부 공보 매체)
  11. Restoration Funding and Infrastructure Redesign Announced for the Palace of Knossos (Geotour Crete, 그리스, 2026-03-31)
  12. Iconic Dolphin Mural Collapses at Knossos Archaeological Site (Greek Reporter, 그리스, 2025-05-17)
  13. The Ephorate of Antiquities has collected fragments of the replica of the dolphin fresco (Vema, 호주)
  14. Monitoring deterioration processes in the Palace of Knossos (Fraunhofer, 독일 / EU HERACLES 프로젝트)
  15. Sir Arthur Evans: Knossos, Myth & Reality (Uncomfortable Oxford, 영국)
  16. Rodney Castleden, The Knossos Labyrinth 도서 정보 (Routledge, 1990 / 하이델베르크대학교 도서관 목록, 독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