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10월 24일 토요일
TripNoble

여행 전문 칼럼 신문

공식 자료와 출처로 쓰는 오리지널 여행 칼럼

150만 밤의 수면 기록이 밝힌 여행자들 시차의 진짜 문제

150만 밤의 수면 기록과 22시간 비행이 알려 준 것

150만 밤의 수면 기록이 밝힌 여행자들 시차의 진짜 문제

먼 나라에 도착한 첫날 밤은 대개 비슷하게 흘러갑니다. 몸은 분명 지쳤는데 눈은 말똥말똥하고, 휴대폰을 켜 보면 새벽 세 시입니다. 그러다 정작 낮이 되면 머리가 솜처럼 무거워져, 몇 달을 기다린 거리 풍경이 흐릿한 꿈처럼 지나가 버립니다. 시차증은 장거리 여행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 겪는, 여행의 가장 흔한 손님입니다.

우리는 흔히 시차를 '버티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첫날만 참으면, 이틀만 지나면 괜찮아질 거라고요.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나온 연구들을 차분히 읽어 보면 이야기는 조금 다르게 흘러갑니다. 시차는 의지의 문제라기보다 시간을 고르는 문제에 가깝습니다.

몸속 시계는 비행기보다 느리다

우리 몸에는 잠들 때와 깨어날 때를 알려 주는 시계가 있습니다. 비행기는 몇 시간 만에 여러 시간대를 건너가지만, 이 시계는 그렇게 날렵하지 않습니다.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의 여행 의학 안내서 옐로북 2026년판은 몸이 새 시간에 맞춰지는 속도를 동쪽으로 갈 때 하루 약 1시간, 서쪽으로 갈 때 약 1.5시간으로 설명합니다. 사람은 원래 조금씩 늦게 자는 쪽에 더 쉽게 적응하기 때문에 서쪽 여행이 한결 수월하다는 것입니다.

이 숫자를 계산해 보면 조금 서늘해집니다. 일곱 시간 차이가 나는 동쪽 나라로 일주일 여행을 떠난다면, 몸이 겨우 현지에 익숙해질 무렵 짐을 싸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괜찮아진 것 같은' 느낌의 함정

싱가포르국립대학교 의과대학 수면·인지 센터는 수면 측정 반지를 낀 사람들의 여행 6만 번, 150만 일 밤의 기록을 들여다보았습니다(학술지 《슬립》, 2025년 4월). 결과는 우리가 느끼는 것과 실제 몸 사이에 틈이 있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잠자는 시간의 양은 이틀 정도면 평소로 돌아왔지만, 잠드는 시각과 잠의 질이 제자리를 찾는 데는 일주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동쪽 여행이 서쪽보다 수면을 더 크게 흔들었고, 새벽 비행기를 타느라 전날 잠을 설친 사람일수록 시차를 더 심하게 앓았습니다.

"이틀 지나니 괜찮던데?"라는 말은 반쯤만 맞는 셈입니다. 잠은 채웠어도 밤중에 자주 깨고 낮에 집중이 흐려지는 상태가 한동안 이어질 수 있습니다. 도착 직후 며칠은 중요한 약속이나 긴 운전을 조금 미뤄 두는 편이 몸에도, 여행에도 친절한 선택입니다.

도착 시각이 열흘을 바꾼다

2026년 6월, 호주 시드니대학교 연구팀은 같은 학술지에 흥미로운 결과를 내놓았습니다. 몸속 시계와 수면, 빛의 영향을 넣은 계산 모델로 5만 5천여 편의 비행을 시뮬레이션하고 실제 운항 중인 직항 32만여 편과 견주어 본 연구입니다. 동쪽으로 시계를 한두 시간에서 일곱 시간까지 당기는 비행은 몸이 완전히 적응하는 데 평균 2주가량, 아홉 시간을 당기는 경우에는 3주 가까이 걸렸습니다.

가장 눈길을 끄는 대목은 따로 있습니다. 같은 동쪽 비행이라도 언제 떠나고 언제 도착하느냐에 따라, 가장 좋은 일정과 가장 나쁜 일정의 적응 기간이 적어도 열흘이나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빛을 받는 시간이 몸속 시계를 가야 할 방향으로 밀어 주는 '좋은 시간대'가 따로 있기 때문입니다. 계산 모델의 결과이니 사람마다 다를 수 있겠지만, 항공권을 고를 때 가격과 비행시간 옆에 '몇 시에 도착하는가'라는 질문 하나를 더 올려 둘 이유는 충분해 보입니다.

항공사들도 이 사실에 주목하기 시작했습니다. 시드니대학교는 2026년 7월, 2027년 10월 운항 예정인 콴타스 항공의 시드니~런던 22시간 직항을 위해 기내를 함께 설계했다고 밝혔습니다. 깨어 있어야 할 때는 푸른빛이 섞인 시원한 조명을, 잠들어야 할 때는 해 질 녘 같은 따뜻한 빛을 쓰는 방식입니다. 연구에 참여한 피터 시스툴리 교수는 시차를 완전히 없앨 수는 없어도, 과학을 비행에 적용하면 그 영향을 크게 줄일 수 있다고 말합니다.

햇빛이라는 가장 오래된 처방

결국 우리 손에 쥐어진 가장 강력한 도구는 햇빛입니다. CDC에 따르면 아침 햇빛은 몸속 시계를 앞당기고 저녁 빛은 늦추는 경향이 있습니다. 동쪽으로 왔다면 아침 햇살 속을 걷고 늦은 저녁에는 밝은 불빛을 줄이고, 서쪽으로 왔다면 늦은 오후의 햇빛을 넉넉히 받는 식입니다. 영국 국민보건서비스(NHS)도 도착하자마자 현지 시간에 맞춰 생활하고, 낮에는 밖에서 자연광을 받으며, 긴 낮잠은 피하라고 권합니다. 그러니 첫날 일정은 박물관보다 공원이나 강변 산책처럼 하늘 아래에서 보내는 편이 좋겠습니다.

준비는 떠나기 전부터 시작할 수 있습니다. CDC는 출발 2~3일 전부터 하루에 한 시간씩 잠자는 시간을 옮겨 보라고 권합니다. 동쪽이라면 조금씩 일찍, 서쪽이라면 조금씩 늦게. 기내에서는 물을 자주 마시고 틈틈이 일어나 움직이며, 도착지의 밤에 맞춰 눈을 붙이는 것이 좋습니다. 카페인은 몸에서 절반으로 줄어드는 데 다섯 시간쯤 걸리니, 잠들기 전 커피는 다음 날의 나를 위해 아껴 두는 편이 낫습니다.

반대로 하루이틀짜리 짧은 일정이라면, CDC는 굳이 현지에 맞추지 말고 집에서의 시간을 지키라고 조언합니다. 2026년 9월 멜버른에서 열린 미국 프로 미식축구 경기에서 두 팀이 정반대 작전을 택한 것도 같은 고민에서 나왔습니다. 샌프란시스코 49ers는 일주일 먼저 도착해 천천히 적응했고, 로스앤젤레스 램스는 경기 전날 도착해 원래의 몸 시계를 지켰습니다. 경기는 49ers의 승리로 끝났지만 램스 감독은 시차 때문에 진 것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 경기로 정답을 가릴 수는 없겠지요. 머무는 기간이 길면 일찍 가서 맞추고, 아주 짧으면 집의 시간을 지키는 것. 지금까지 과학이 내놓은 가장 현실적인 답입니다.

수면 보조제에는 조금 조심스러울 필요가 있습니다. 영국 NHS는 시차 증상에 멜라토닌을 권하지 않으며 효과에 대한 근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미국 CDC는 미국에서 멜라토닌이 의약품 규제를 받지 않아 실제 함량이 표시와 다를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수면제나 보조제를 생각하고 있다면 먼저 의사나 약사와 상의하는 것이 안전합니다.

낯선 도시의 첫 아침을 맑은 정신으로 맞는 일은 생각보다 큰 선물입니다. 시차를 이겨 내야 할 적으로 여기기보다, 몸의 시계가 따라올 수 있도록 시간을 조금 골라 주는 일. 다음 항공권을 고를 때 도착 시각을 한 번 더 들여다보는 것으로, 그 배려를 시작해 보면 어떨까요.

※ 이 글은 일반적인 건강 정보이며 의학적 조언이 아닙니다. 수면 장애나 지병이 있다면 의사와 상담해 주세요.

참고 출처

  1. Modeling the effects of flight itinerary on jetlag duration (University of Sydney 연구팀, 학술지 Sleep, 호주, 2026-06)
  2. Sydney researchers design optimised cabin for long haul flights (University of Sydney, 호주, 2026-07-03)
  3. Beyond Jet Lag: New NUS Study Unveils Extent of Travel-Related Sleep Disruption (NUS Yong Loo Lin School of Medicine, 싱가포르, 2025-04-09)
  4. Jet Lag Disorder — CDC Yellow Book 2026 edition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 미국)
  5. Jet lag (NHS 국민보건서비스, 영국)
  6. San Francisco 49ers and Los Angeles Rams take opposing jet lag strategies into Melbourne NFL game (ABC News, 호주 공영방송, 2026-09-10)
  7. 49ers easily defeat 'withered' Rams in battle of competing Australian jet lag strategies (NBC News, 미국, 2026-09)
  8. A new way to beat jet lag? Engineered cells speed circadian adjustment (Rice University, 미국, 2026-08-14)

※ 본 칼럼의 썸네일 이미지는 AI 기술을 활용하여 제작되었습니다.